<1149호> 120년 미얀마재림교회…“할 수 있는 게 없다”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3-30 (화) 14:30
120년 미얀마재림교회…“할 수 있는 게 없다”

재림교회 병원은 1965년 강제 국유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버마)에 재림기별이 전파된 것은 우리나라보다 1년 앞선 1903년이었다. 다우 메이란 여성이 1900년, 출애굽기 20장에서 스스로 안식일을 깨닫고 남동생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다가, 인도에서 온 재림교회 문서전도자를 만나 성경을 공부하고 1903년 최초의 재림교회 성도가 됐다. 
미얀마 재림교회의 핵심 선교사역은 교육, 출판, 의료사업이었다. 1907년 의학박사인 올리 오버홀처 토르블라드 박사가 미국에서 양곤으로 의료선교사로 왔다. 그녀의 헌신적인 봉사로 같은 해에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에서 23명의 성도로 구성된 최초의 교회가 조직됐고 1910년엔 온다우 사역자 양성학교가 시작됐다. 1915년에 학교와 기숙사가 있는 직업학교가 설립됐고, 1948년엔 양곤에 60병상 규모의 병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50년엔 출판소가 설립됐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독립운동, 그리고 반파시스트 연맹, 공산주의자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의용군, 그 외 여러 소수민족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교회는 어려운 길을 가야 했다.  
1961년 불교를 국교로 하는 법이 제정되자 소수종족과 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무력 봉기가 일어났다. 그걸 무마하고자 헌법을 개정해 종교 자유를 허용하자 이번엔 불교 승려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소수종족의 자치권을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자, 마침내 1962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는 빌미가 됐다. 재림교회의 자랑이었던 병원은 1965년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국유화되고 말았다. 
미얀마에는 135개의 소수 인종이 있고, 이들의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이로 인해 정치적, 종교적 이유의 난민이 다수 발생하는 세계 5위 난민 발생국이다. 미얀마 군부는 2017년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대적 학살을 자행했다. 현재 한국에는 2015년부터 해마다 4~8가구가 난민 지위를 얻어 주로 인천 부평과 김포, 서울 강서구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난민 대열에 재림 성도들도 포함돼 있다. 
오랜 군부 통치가 끝나고 2016년 국민투표에 의해 아웅산 수치가 집권했으나, 올해 2월 1일(현지시각) 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시민의 기본권인 자유를 심각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재림교회도 모든 업무가 정지되고 지역의 교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인도와 국경을 맞댄 한 지역의 성도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교회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데다 목사와 장로의 방문도 없어 신앙이 점점 식어지고 성도들이 흩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미얀마에서 선교하는 서병웅 대륙선교회 선교사는 “불교, 이슬람, 기독교 등 모든 종교 집회가 금지돼 다들 재정이 고갈된 상태”라고 전했다. 2월 1일 쿠데타 발생 이후 45일간 638명이 군부에 의해 사망했다는 현지의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소수종족과 아웅산 수치 세력이 연합해 군부와 내전을 벌일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현지의 재림성도들과 한국인 선교사들 모두 결코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미얀마의 인구는 5400만 이상으로 우리나라보다 많지만, 2019년 6월 현재, 재림교회는 정규직 목회자 40명, 계약직 목회자 173명, 교회 239개소, 재적교인 3만3692명에 불과하다. 

김성일 ksi39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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