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9호>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0-02-14 (금) 10:44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 윤지연 / 윤지연아동가족연구소장 




2020년 신년을 맞이하며 사회와 많은 사람들이 들떠있지만 피에로 웃음의 이면엔 숨겨진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어둠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그 어두운 이면을 바라보며 우리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우리의 신앙도 더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치유공동체의 시작 이웃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간 도서관 서가에서 ‘치유적 공동체’라는 책제목을 읽고 가슴 한편이 뭉클하게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정신의학에서는 ‘치료적 환경(therapeutic milieu)’이라고도 하고 ‘환경치료(milieu therapy)’라고도 하는데 치료가 전인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이 치료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상담실에서는 문제가 해결되다가도 삶으로 돌아가면 재발을 거듭하는 이유는 삶이 바뀌지 않는 한 근원적으로 해결점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치유적인 공기가 만들어지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더 이상 잘못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 정혜신 

이 세상 삶을 살면서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상처사이를 피하는 방법을 익힌 소수는 그나마 행운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나으면 나는 그 상처에 관한 백신으로 타인의 삶속에 선물이 될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실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염려부터 앞선다. 그러나 ‘당신이 옳다’의 저자이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은 이웃인 우리가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는 “치유는 공기와 같은 것”이라며 이웃 치유자의 힘을 주장한다. 우리가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움직일 때 사소한 것이라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내려박힌다는 것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 받아 본 경험을 통해서 최고의 치유자가 됩니다. 자신이 상처를 받아봤고 그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이 무엇으로 움직이는 지를 이미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상처를 인식하고 인정해서 치유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든 최고의 치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혜신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죽음이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를 차지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그들의 소식을 무심결에 듣게 될 정도로 자살소식이 끊이지 않다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누군가의 자살소식이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며,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그들의 죽음을 바라본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이해: 자살은 사회구조적 타살인가? 자기주도의 죽음인가?
‘자살론’을 쓴 뒤르켐은 사회에 의한 비합리적, 집합적 강제가 높은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다고 했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일수록, 물가 수준이 높고 과시적 소비가 많은 사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모든 자살의 원인이 ‘사회적’으로 수렴된다고 할 수 없지만 ‘자살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자살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것’엔 장애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어느 면에서 일맥 한다. 
장애학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이해에서 출발한다. 장애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에서 보면, 장애(disability)를 손상(impairment)과 구별한다. 설명하자면 손상이란 우리가 가졌거나 가질 수 있는 생물학적인 몸의 상태이다. 다리가 없는 것, 눈이 빛을 감지 못하는 것, 근육의 힘이 약한 것, 청력을 활용하지 못한 것이 손상이다. 하지만 장애는 그 손상에 어떤 사회적 힘이 가해짐으로써 차별과 억압이 창출된 상태라고 장애학에서는 말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계단 앞에서는 장애인이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듯, 손상이 장애로 이어지는 연결을 사회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장애학의 핵심이다. 이러한 장애학적 핵심을 자살로 적용해보자. 개인의 어떠한 손상이 자살로 이어지는 모종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것, 그것을 사회구조적인 변화로 구현하자는 것이 자살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일본의 법의학자 우에노 마사히코는 2만구의 시체를 검시한 후 2019년 “자살의 9할은 타살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30여 년간 직접 부검한 변사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자살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외부 요인들의 작용으로 이뤄진다는 그의 지적은 많은 공감과 시사점을 전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돼갈 무렵, 불현듯 실시간 검색창에서 본 안타까운 자살소식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자신을 끊어내는 것으로 그 공격성을 자신에게 향했던 그들의 선택, 어렵지만 또 한 번 공감해본다. 한 번의 출생과 한 번의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자기의 의도와는 무관했던 출생과는 달리 자신의 죽음을 자기 주도적으로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의미에서 자살은 또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의 배경이 된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세상의 작은 자와 연결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자살 앞에 ‘충만한’ ‘풍요로운’ ‘밝은’이란 수식어를 붙이기가 어색하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3:40).
자신이 계획한 자신의 죽음 앞에 선 그들보다 세상에서 더 작은 자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들은 곧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접점이다. 다시 말해 경쟁사회 안에서 고립되고, 절망 속에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찬란한 빛과의 조우를 열어준다. 작고 큰 봉사로 삶의 진정한 기쁨을 되찾은 수많은 경험의 노래들은 이를 반증한다. 


내 상처가 나으면 나는 이제 백신입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효약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오직 나만이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조정민, 사람이 선물이다’


‘적정기술’이란 말이 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개념인데 제3세계의 생활을 개선시키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첨단과학기술이 아니라 그 사회의 환경과 조건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내 이웃의 치유자로 적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우리가 각자 속한 공동체의 치유적인 공기를 만들어내는 1인으로 선다면, 내 이웃을 자살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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