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7호> 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하)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0-12-22 (화) 15:05
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하)

조사심판 관련한 논란에 대해




연일원칙, 과연 성경적인가
과거 수백 년 동안에는 많은 성경학자들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기간 예언들을 연일원칙에 따라 해석했다.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해석자들은 보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 막론하고 이 원칙의 타당성을 부인한다. 심지어 일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까지도 오늘날 연일원칙을 부정한다. 데스몬드 포드는 1978년 그의 책 ‘다니엘서’의 부록에서 상당히 길게 그 원칙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2년 후 글래시어뷰에서 발표한 원고에서는 “연일원칙의 증거가 어디 있는가? 대개 민14:34과 겔4:6과 단9:24~27을 내세웠으나, 분명히 이것들은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기록했고 레이먼드 코트렐 역시 연일원칙은 어떤 성경적 근거도 없는 가짜 원칙이라고 말했다.
성경이 연일원칙을 글자 그대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포드와 코트렐이 옳다. 삼위일체의 교리 역시 성경 어디에서도 그것을 서술하지는 않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교리들 중 하나로 믿는다. 삼위일체를 성경에서 도출한 것처럼 동일한 맥락에서, 연일원칙 역시 성경이 그것을 그대로 명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도출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윌리엄 셰이가 지적한 것처럼, 단9:24~27에 예언된 사건들이 문자적인 70주일 즉 1년 5개월 안에 완료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된다. 과거주의자든지 미래주의자든지 역사주의자든지를 막론하고, 한 마디로 문자적인 69주일이나 70주일은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읍을 재건하기에 충분한 기간이 못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에 관계된 예언적 진술에 대해서는 장기간의 역사적 실제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이해한 기간이 해석의 틀에 맞추기에 너무 짧아지면, 과거주의, 미래주의, 역사주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날이 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놀라운 것은 70이레의 기간을 연일원칙으로 적용했을 때에 나타난 결과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아닥사스다의 명으로부터 27년의 그리스도의 침례까지가 정확하게 483년(483일=69이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70이레 예언의 연일공식의 타당성을 확인한 셈이다. 또한 그것은 단8:14의 2300년의 기산점을 제공한다. 70이레가 기원전 457년에 시작됐으므로 2300년도 동시에 시작되는 것이고, 1844년에 마치게 된다. 
다니엘의 예언들을 이렇게 이해함으로, 예수님의 침례로 정확한 시간에 이것을 확인함으로, 단8:14의 성소의 정결/옹호는 1844년에 시작했다는 재림교인들의 입장이 정당한 이유를 얻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휘장 안에 들어가심
히브리서는 분명히 그분께서 승천하셨을 때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가르친다. 히9장은 속죄하기 위한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 지상의 대제사장과 비교하고 대조한다(히9:7). 만약 예수께서 그분의 승천 때에 그분의 피로 속죄를 하셨다면 그분이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 1844년까지 기다리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재림교회의 성소 해석은 히브리서와 모순되는가?
이에 대한 다수의 재림교회 학자들의 대응은 이렇다. 예수께서 “휘장 안에” 들어가신 것이 아론이 속죄일에 성소에 들어간 것보다는 모세가 성소 봉헌식에 지상 성소에 지성소 칸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한다(출30:22~30;40:1~16;레8:10~13;민7:1~88). 
다시 말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는 누구든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경우를 단 두 가지만 언급한다. 하나는 모세가 지성소에 언약궤를 안치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성별한 때였고, 다른 하나는 매년 돌아오는 속죄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휘장 안에” 하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하는 히6:19,20은 하늘 성소의 개관식이 아니면 하늘의 속죄일의 관한 언급이다. 문제는 이 둘 중에 어느 쪽이냐 하는 것이다. 
이미 기술된 것처럼 데스몬드 포드는 히6:19은 분명하게 속죄일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문맥을 고려하면 히6:19,20에서는 원형적 속죄일에 대해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크게 두 가지의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 속죄일과 관련된 표현이 없다. 
둘째, 개관과 관련된 표현은 있다. 
즉, 하늘 성소의 속죄일이든 개관식이든 히6:19,20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이 구절의 직접적인 문맥은 하늘의 속죄일 사건보다는 하늘의 취임/임명 사건을 분명히 가리킨다. 

엘렌 화잇의 하늘성소 사상
1) 예언의신이 성경과 동일한 차원의 영감을 받았다 할지라도, 재림교회의 믿음의 기초는 엘렌 화잇의 말이 아니라 성경이다. 재림교회의 모든 교리는 반드시 항상 성경의 기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교리가 성경으로부터 만들어진 후에 나는 엘렌 화잇이 성경에 없는 자세한 내용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고 본다(코트렐은 이와 반대로 엘렌 화잇을 조사심판의 기초로 삼았다).
2) 조사심판은 하나님께서 이미 내리신 결정에 수긍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도들을 반대하는 사단의 고소 앞에서, 천사들은 그 고소를 살피고 있으며, 예수님은 천사들에게 성도들에게 내린 자신의 심판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엘렌 화잇의 요점이다.
3)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속죄는 완전히 이뤄졌다. “지금 속죄를 하고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희생의 속죄의 혜택을 적용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뒷받침한다. “갈바리 이후에 하늘 성소의 봉사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속죄의 혜택을 자기의 제자들에게 뿌리고 있다.”
4) 초기문집의 엘렌 화잇의 진술은 문자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다(참고422쪽). 하늘 성소가 지상 성소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것은 지상 성소를 그대로 본뜬 것이 될 수 없다(이점은 로이 아담스의 ‘하늘성소’와 비슷한 주장이다). 초기문집에서 엘렌 화잇은 하늘 성소를 구약의 지상 성소를 묘사하는 언어를 사용해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마치는 말
조사심판의 교리가 필요한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조사심판의 가르침이 개인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1)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피하도록 도와준다.
2) 조사심판의 교리는 우리가 투명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3)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1:18). 이 교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합리적인 분임을 알려주신다.
4) 조사심판의 교리는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임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준다. 
5) 조사심판의 교리는 심판 때에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스러움을 덮으시려고 그리스도의 의를 제공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6) 조사심판의 교리는 죄와 고통이 끝날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악의 최후가 이르고 있다는 것을 본다(신정론을 위한 조사심판).
7) 조사심판의 교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8) 조사심판의 교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기별의 중요한 부분이다. 
9) 조사심판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고 알려준다. 조사심판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힘센 복음을 만든다. 

정리 김진영 domabeam1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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