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호> 주식, 투자냐 투기냐?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3-10 (수) 16:32
주식, 투자냐 투기냐?

신앙관과 가치관, 삶의 방식과 태도에 달린 것



한국투자증권이 주최한 모의 투자대회가 열렸다. 1000만 원의 자본금을 갖고 한 달간 각종 주식에 모의 투자해 최종 수익률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다. 대회의 결과는 주식을 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곰치’란 닉네임으로 대회에 참가한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대회 내내 단 한 건의 매매도 매수도 하지 않아 수익률 0%를 기록했다. 그런데 1500명의 참가자 중 50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상위 3.3%에 속하는 기록이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인류역사 최고의 천재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주식으로 전 재산의 90%을 잃은 후 “나는 천체(우주)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까지 계산할 수 없었다”(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공산주의 사상의 창조자 마르크스는 증권투자가 지극히 주술적이고 기만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증권투자가 기업가치란 명목을 앞세운 허상, 가상에다가 자본이 갖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주술적이고 기만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물론을 추종했고, 물질적 실재가 뒷받침되지 않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는 역사의 여러 사례들이 보여준 것처럼, 그리고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순전히 사기행각에 동참하는 것 또는 사기를 당하는 것에 불과할까. 성경에도 기업가치와 같이 관념적인 권리를 실재적인 것으로 믿고 매매한 행위를 찾아볼 수 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장자권의 사례(창25:29~34)다. 이런 예는 주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케 한다.

주식해도 될까?
그리스도인도 돈을 벌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합법적인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사유재산과 자유경쟁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정당한 방식으로 벌어서 정당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속한 사회의 법률, 제도, 관습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여러 대형 부정 사건에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이들이 연루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속한 사회가 정한 선을 넘었을 때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게 된다.
주식투자의 원래 목적은 선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액을 모아 큰 자본을 형성해 큰 회사를 경영케 하려는 것이다. 또 그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허용한 것도 대주주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주주가 돼 회사가 그 본래의 목적대로 이익 추구에 최선을 다하고 건전하고 투명하게 경영하는지 감시하라는 뜻이었다.
유독 그리스도인의 주식투자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단기투기성 투자 때문이다. 매일매일 시세 차익을 노리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이 쏠려 있을 수밖에 없다. “연인과 헤어졌는데 도저히 잊을 수 없다면 주식에 투자해라. 주식의 등락을 지켜보느라 헤어진 연인은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젊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주식투자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시매매를 통한 단기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이것은 투기다. 둘째는 그 회사가 재무상태가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으며 건전한 사업 방향성에 동의해, 경영에 참여 내지 관심을 가지려는 것이다. 이것은 투자다. 회사의 발전과 함께하며 매년 이익배당금을 받는다.
주식투자에 관한 문제는 주식투자를 해선 된다 안 된다는 식으로, 이분법으로 접근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의 저널리스트 이언 레슬리(Ian Leslie)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들’(Born liars)이란 책에서 “현대사회는 거짓말로 지탱되고 있으며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선수를 속이는 페이크(fake) 동작도 넓은 의미에서 거짓말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김명호 은퇴목사는 이와 관련해 “운동규칙에 위반되지 않는, 운동 기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주식투자 역시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투기냐 투자냐, 그것은 평소 신앙관과 가치관, 삶의 방식과 태도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투자는 자신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김 은퇴목사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1, 24)는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 될 때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김 은퇴목사는 “회사가 발전함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올리는 등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한다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중한 투자를 주문했다.

주식투자로 헌금 확충해도 될까?
주식투자와 관련해 성도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주식 투자를 통해 교회의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재림교회에서도 연금이나 부양료 등의 재정 확보를 위해 투자하고 이윤을 얻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의문은 한국 개신교계 전반이 갖고 있다. 그래서 최근 한국실천신학회에서 ‘복음과 재정’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 바 있어 보고서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한국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 경제제도에 의존해 움직이는 사회로 발전하면서, 한국교회 재정 운영에 소요되는 경제 규모 역시 커져갔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재정을 오직 성도의 헌금에만 의존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어떤 재정을 확충할 방법이 있는지 질문이 필요하다.
130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여러 선교사들이 헌신했는데, 이들의 활동 경비는 그들을 파송한 구미 교회들의 후원에 의한 것이었고, 이는 결국 해당 교회 성도들의 선교헌금이었다. 이후 미국의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중국 선교사인 네비우스(J. L. Nevius)가 주창한 ‘자진전도·자력운영·자주치리’의 3자(三自) 선교정책에 따라, 한국 성도는 복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자립 정신과 규칙적인 헌금 습관을 배웠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이후 1960년대부터 한국교회가 급속 성장하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교회들은 성도의 헌금을 은행에 저축해 재정을 확충하거나 개발 중이던 강남 지역에 투자해 대형교회를 이뤄냈고, 전용 공동묘지를 구입하거나 수양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가장 수적으로 부흥했던 1960~90년대 개별 교회의 성장과 경제 자립에만 매달렸지, 날로 더 많이 소요되는 재정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공동으로 만들지 못했다.
오늘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헌금으로 더 큰 재정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묻는다면, 대부분 ‘주식투자’를 답으로 내놓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주식투자 자체를 부덕한 행위로 간주할 순 없지만, 헌금이 ‘주식투자’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거리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투자와 투기는 한 끗 차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림교회의 경우 헌금을 주식투자에 사용하지는 않지만 목회자 부양료는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일반 개신교에 비해 재림교회는 보수적인 입장이라 볼 수 있다. 
경제적 착취나 탐욕으로 인한 부의 편재는 인간 사회를 타락시키고 권력의 오용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재림교회 또한 같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선 교회의 주식투자에 관해 “공적 통제가 필요하고, 국민 복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면서 동시에 인간의 가치와 지위도 경제적 발전과 함께 우선돼야 한다”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긴장 관계의 대립은 타협을 통한 끝없는 개혁으로 해결돼야 하며 무엇보다 교회가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영적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교회가 또는 그리스도인이 주식투자를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문제는 개인의 영역으로만 남겨두기엔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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