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호>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셨어요”- 이영수 장로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0-02-06 (목) 11:19

 - 이영수 장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셨어요”


나라얀푸르 봉사현장에서 만난 이영수 장로



“순전히 아이들 안식일 문제 때문이었어요.”
방글라데시 나라얀푸르 봉사현장에서 만난 이영수 장로는 아르헨티나와 일본, 미국 등지에서 수없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이 장로는 1987년 12월 아르헨티나 이민 길에 오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도착하자마자 몰려오는 후회
비행기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에 다다르자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와 잘 가꿔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집마다 수영장도 있고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입국심사부터 어려움은 시작됐다. 세관에서 서류에 문제가 있다며 입국을 거부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세관에서 뇌물을 요구하는 것. 결국 200달러를 세관원의 손에 쥐어주고야 입국할 수 있었다.
현지 교회 목사의 차를 타고 가는데 이 장로는 눈을 의심했다. 공항에서 보던 아름다운 주택은 일부에 불과했고 이 장로와 가족이 있을 집은 빈민촌의 아주 낡은 것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어린 아들이 엄마의 품에 안기며 “엄마 우리 잘못 왔어”라고 하는 소릴 들은 이 장로의 가슴이 미어졌다.
이 장로는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각오로 아르헨티나에 왔다. 우선 구두수선부터 하기로 했다. 한 달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2년간 일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갈 무렵 미국에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사면령이 내려진단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이 장로는 몇몇 한국인들과 함께 브라질로 밀입국했다. 국경을 넘어 브라질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는 예언의신 구절이 생각나 터미널 바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곧 이민국에서 나와 밀입국자들을 모두 체포했다. 이 장로는 “그 순간 예언의신 말씀을 떠오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영주권 신청은 순조롭게 진행돼 1년만 있으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발생했다. 구둣방 계약을 2년 단위로만 할 수 있는 것. 졸지에 이 장로는 직업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신문에 일본에서 막노동 일꾼을 모집한단 소식을 듣고 1년 동안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며 가족을 보살폈다.
무사히 일본에서 일을 마치고 아르헨티나에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었다. 이제 곧 미국으로 가야하는데 집이 팔리지 않았다. 집이 팔려야 비행기 표를 살 수 있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부동산을 돌아다녀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집에 찾아와 “이 집 팔 것이냐”고 물었다. 갑작스런 제안에 이 장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더구나 예상보다도 높은 가격에 집을 사겠다고 했다. 또한 출국 날짜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있으라고 덧붙였다. 이 장로는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일 것이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고 비웃던 옆집 사람이 놀랍게 집이 팔리는 모습을 보더니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군요” 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

환란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장로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메릴랜드로 인도했다. 그 이유를 이 장로는 곧 알 수 있었다. 이 장로가 미국으로 가던 1991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만약 이 장로가 원했던 대로 갔으면 폭동에 해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메릴랜드에서 이 장로는 닭공장 직원, 공항 야간청소부, 식료품점 직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일을 지키기 힘들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타국까지 왔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치기공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내쉬빌로 인도하셨다.
하루는 이 장로가 길을 지나는데 어느 한인개신교회에서 건축 공사 중 사고가 발생한 것을 봤다. 그리고 위로하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보냈다.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 것이었다. 이 장로의 작은 위로가 개신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크게 울렸던 모양이다. 헌당예배에 이 장로를 초청했다. 그렇게 이 장로는 내쉬빌 한인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훗날 내쉬빌 한인회가 조직되자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인회장으로 있는 동안 이 장로는 한글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고 재림성도로서 한인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참전용사로서 봉사활동 펼쳐 
이 장로는 해병대원으로서 베트남전쟁 참전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싸운 미국 용사들에게 남다른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다. 그래서 이 장로는 매년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 장로가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재림성도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다.
이 장로는 2년 전부터 침술을 배우고 있다. 이번 나라얀푸르 봉사기간 중에도 침술로 아픈 현지인들을 어루만졌다. 그가 30년 가까운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도 더욱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일본, 미국 등지에서 숱한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그로인해 더욱 뜨거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장로는 “나라얀푸르에서의 봉사활동은 나만 한 것이 아니라 봉사단 전체가 한 것이며. 이곳에 오지 못했지만 물심양면으로 애쓴 성도들이 함께 한 것이다”고 강조하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린다”고 전했다.



나라얀푸르 봉사 여러 성도의 기도와 도움으로

김종국 “더 많은 분들이 선교에 관심 가지셨으면”

방사모봉사단(단장 김종국)이 방글라데시 나라얀푸르에서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전도회를 개최했다. 1000여명이 말씀집회에 참석했으며 안식일엔 69명의 영혼이 거듭났다.
김종국 단장은 “이렇게 폭발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광경은 쉽게 보기 힘든 것이다”며 “방글라데시는 큰 가능성을 지닌 땅이다”고 전했다. 이어 “이 모든 일은 기도하며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방사모의 봉사는 크게 ▲전도회(김종국, 이신희)를 비롯해 ▲우물 개발(삼육식품총판선교협의회. 김영현. 김기복. 고용호. 김의겸. 한삼 제23회 동문. 이완택. 김복순. 김종성. 최옥희) ▲염소 지원(한삼 제23회 동문. 이신희. 유재원. 신영희. 권혁우. 장순녀. 송선옥. 김정미. 서이천교회. 원두리교회. 김경자. 이영수) ▲1000명선교사 지원(김종국. 이신희. 엔게디여성합창단) ▲교회건축(김종국. 이신희) 등으로 나눠 진행됐다.
김 단장은 “크고 작은 손길이 모여 복음 사업이 진행될 때 감동을 느낀다”며 “여러 성도들의 봉사를 보시고 용기를 얻어 선교에 관심을 갖는 성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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