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0호> 한반도 척추에서 타오른 복음의 불꽃 - 반내현 성도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4-02 (금) 13:44
한반도 척추에서 타오른 복음의 불꽃

반내현 성도가 삼척과 묵호에 뿌린 씨앗


1. 동해안 지역선교 
2. 보성일대 선교
3. 안면도 선교
4. 평신도전도단 선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Edward Hallett Carr)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이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역사란 의미다. 재림신문은 개편을 맞아 한국재림교회 역사에 남겨진 평신도들의 선교 발자취를 돌아보고 의미를 되새기고자 연속 기획을 게재한다.


일제(日帝)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조선교회의 형편은 암담했다.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일제의 탄압에 선교사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은 종로 경찰서에 무더기로 끌려가 고문에 시달리며 하나 둘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1943년 12월 교회가 해산되고 지도자들은 대부분 목회를 떠나 각기 먹고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으며 뜻 있는 성도들은 멀리 산속이나 외딴 마을 아니면 개인의 집에 숨어들어 지하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다. 교회 조직도, 건물도, 지도자도, 성도도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평신도였던 반내현 성도가 일어섰다. 자신이라도 나서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돌봐야겠다고 다  짐한 것이다.

100㎞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반내현 성도는 독학으로 약간의 학문을 익혔을 뿐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그러다 강원도 횡성의 한 여관에서 접수하는 일을 하다가 박기풍 목사를 만나 신앙을 받아들였다. 신앙을 하자마자 가슴에 뜨거운 불을 품고 문서전도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가 1944년 1월 중순이었다.
그는 100㎞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평안남도 장매리교회 및 평양, 개천, 해주, 목암, 태탄, 서울 원남동, 양양 등을 방문하며 성도들을 만나 격려하고 성경을 가르쳤다. 적목리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양양, 강릉 등을 방문했다.
1944년 12월 중순 경, 반내현 성도는 묵호 선교 여행을 마치고 내친김에 삼척까지 가서 전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척에 박병남이란 구도자가 있다는 얘기만 듣고 다소 무모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삼척에 도착했지만 삼척과 박병남이란 두 가지 단서만 갖고 박병남 씨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난감하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보니 문득 박병남 씨가 소달구지 끄는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길가에 서서 소달구지를 끄는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소달구지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혹시 박병남이란 사람을 아십니까?” 
“글쎄요, 그 사람 몇 살입니까?” 
“잘 모릅니다.” 
“내 아랫집 사는 청년 이름이 박병남인데 어쨌든 나를 따라 오시지요.”
그 사람을 따라 찾아간 집에 마침 박병남 씨는 없었다. 대신 그 집에 살고 있는 노인에게 박병남 씨의 행방을 물으니, 그 사람은 자기 아들인데 크리스마스 준비한다고 교회에 가고 없다는 것이었다. 반내현 성도는 크게 실망했지만 혹시나 마주칠까 싶어 거리로 나갔다. 12월 중순이라 해가 짧았다, 어느새 거리엔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실망 뒤에 찾아온 희망 
한기가 외투를 파고들던 그때 반내현 성도의 머리에 무언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지인이 기차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자신이 재림성도라고 말하니 관심을 보였다는 것. 하지만 그 사람이 삼척방송협회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도무지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작정 삼척방송협회로 찾아가기로 했다.
삼척방송협회에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 이름이 맴돌았다. 어느새 추위도 잊어버리고 그 사람이 김 씨였단 것을 생각해냈다. 부지런히 걸으며 결국에 마지막 자가 ‘호’였단 것까지 기억해낸 그 순간 누가 옆에서 이름을 불러주기라도 한 것처럼 “김관호”하고 소리쳤다. 
반내현 성도가 삼척방송협회에 거의 도착할 무렵 중절모를 쓴 어떤 신사가 가방을 들고 그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반내현 성도는 그를 쫓아가 물었다.
“방송협회가 어딥니까?” 
“방송협회의 누굴 찾으십니까?” 
“김관호라는 분을 찾습니다.” 
“접니다만, 왜 찾으십니까?”
반내현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반내현 성도는 김관호 씨의 추천을 받아 여관을 정하고 거기서 성경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김관호 씨는 성경이야기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반내현 성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 선생님은 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오죽 못나면 자기 성을 갈겠습니까!”
그러자 반내현 성도의 눈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일본이 망할 것을 아십니까?”
“어째서요?”
“일본의 멸망이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 말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런 말이 있으면 배우시겠습니까?”
“그런 말이 있으면 배우겠습니다!” 

타오르기 시작한 복음의 불꽃
삼척 지역의 재림교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 반내현 성도에게 성경을 배운 박병남, 김관호 씨는 또 다른 구도자들인 김계환, 임한석 씨 등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이들은 안식일마다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며 삼척교회의 든든한 기초가 됐다.
1945년 6월 16일 삼척과 묵호지역의 첫 침례식이 있었다. 침례식을 위해 반내현 성도는 개성에 머물던 김명길 목사를 초청했다. 당시 김명길 목사는 일경의 감시를 피해 여성용 가방을 판매하는 행상 차림으로 성도들을 격려하러 다녔고 성경을 대부분 암기해 설교함으로 일경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이날 삼척과 묵호의 성도들을 다 모으니 30명이 넘었다. 일경의 감시가 삼엄해 밤에 침례식을 하려고 했으나 그 날은 이상하게도 해가 뜬 후에도 묵호 일대에 안개가 짙게 깔려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이에 예배 후에 침례식을 갖기로 하고 예배가 끝난 후 성도들은 후진 강가로 모였다. 이 날 허석 씨 부부(재침례), 김관호 씨 부부, 장옥석 씨 부부, 장기철 씨 부부, 박병남, 김계환, 임한석, 주채옥 씨 등 18명이 침례를 받았다.
침례식이 마친 후 성도들은 물가에서 성만찬예식을 가졌다. 떡은 있었으나 포도즙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김명길 목사는 물에 설탕을 타고 거기에 붉은 물감을 넣어 포도즙 색깔을 만들어 모두에게 마시게 했다.
강에서 침례를 받고 백사장 큰 바위 아래서 세족예식과 성만찬예식을 갖고 헌신예배를 드렸다. 모든 예식을 마치고 물가를 떠날 때, 그렇게도 짙게 덮여 시야를 가렸던 안개는 10여 분만에 모두 사라졌다. 놀라운 섭리로 타오르기 시작한 복음의 불꽃은 해방과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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