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호>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구원과 바꿀 건가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2-26 (금) 08:47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구원과 바꿀 건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정재용 선생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재림교회 전도사였던 박종은은 100여명의 군중 앞에서 조선의 독립의 내력을 설명했다. 3월 2일 오후 7시 교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3월 3월에는 10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평양 외곽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평남 대동군 용산면의 거촌 재림교회 최경선도 교회에 모인 500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 외에도 여러 재림교회 성도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것이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기독교는 세속주의와 이기심과 탐심의 식민지가 됐다. 재림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주님의 재정을 다루는 일에는 늘 두려움과 엄숙함이 있어야 하건만, 호주머니 쌈짓돈 다루듯, 교회 재정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들이 잊을만하면 터지곤 했다. 그리고 아무도 정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도록 허술하게 뒤처리하는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일부 성도들은 교단을 이용해 부당한 방법으로 개인의 사업적 이득을 얻으려는 탐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도 ‘나사렛 예수’로 깔보기 때문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조롱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했던 이재철 목사는 1998년 스위스 한인교회의 초청으로 3년간 선교사로 갔을 때, 자녀를 동반하는 걸 당연히 생각하던 현지 교회에, 자녀를 동반하지 않는 조건으로만 가겠다고 제안하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목회자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으로 가면서 가족이 덩달아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해외로 선교를 나가는 목회자를 지원하는 결정을 할 때도 소위 선진국으로 가면서 자기 자녀를 데려가는 목회자는 지원 목록에서 배제했다. 반면 어려운 나라에 가면서 자녀를 데려가는 선교사들은 적극 지원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재림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14:7)라는 세천사의 기별을 우리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한다.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눅10:14)고 말씀하시기 전에.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망우로 21길 18, 302호 / 전화: 02)960-0690 / 팩스:02)968-2293 / 이메일: 3004news@hanmail.net /등록번호: 204-29-34632 Copyright ⓒ 재림신문. All rights reserved.